![[게이머그라피] 몰래 시작한 프로게이머…박용욱(1)](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208231219090065576dgame_1.jpg&nmt=27)
강민, 최연성, 박성준, 박태민 등과 함께 4대 천왕과 택뱅리쌍의 시대를 잇는 교량 역할을 했던 박용욱은 전략가도 생산력의 달인도 아니었지만 두뇌 플레이와 집요한 승부 근성을 통해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몰래 시작한 불장난(?)
e스포츠라는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던 2000년대 초반은 프로게이머라는 말보다 '게임 폐인'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습니다. 직업적으로 게이머를 하겠다고 말하면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항하겠다, 삐뚤어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죠. 부모님들 또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기에 이런 말을 하면 자연스레 '미쳤다'라고 반응하던 시기였습니다.
박용욱의 부모님도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아들이 평탄한 길, 남들이 가는 그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용욱에게는 e스포츠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나 봅니다.
박용욱은 한창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게임 대회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책과 연필보다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출전한 대회가 2001년에 열린 한빛소프트 스타리그였습니다. 전국 규모의 대회에 나가보고 싶었는데 예선을 통과했고 16강, 8강, 4강까지 올라갔던 것이지요. 학교에는 양해를 구했지만 부모님께는 설명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답니다.
![[게이머그라피] 몰래 시작한 프로게이머…박용욱(1)](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208231219090065576dgame_2.jpg&nmt=27)
결국 4강에 오르고 나서야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이번 대회만 나가고 입시 준비를 하라는 엄명이 내려졌습니다. 그 길로 박용욱은 게이머의 꿈을 접고 조용히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했고 대학 진학까지 목표를 완수했습니다. 데뷔 무대가 마지막 무대가 된 셈입니다.
◆동양 오리온에서 꽃을 피우다
대학을 다니던 박용욱은 게임에 대한 생각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똑같이 가기 보다는 프로게이머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e스포츠라는 말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였고 게임단 또한 체계를 잡아가고 있었기에 박용욱은 다시 게이머를 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대학에 휴학을 신청한 박용욱은 한빛 스타즈로 복귀했습니다. 1년 가까이 쉬었기에 기량을 끌어 올리기에는 반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죠.
그러던 차에 박용욱에게 영입 제의가 옵니다. 주훈 감독과 임요환이 주축이 되어 팀을 하나 만드는데 함께할 사람이 필요하고 박용욱이 프로토스의 한 축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한빛 스타즈 이재균 감독은 주훈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박용욱 또한 새로운 팀에서 기회를 잡아보겠다는 마음에 합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한빛 스타즈는 김동수, 강도경, 변길섭, 박정석 등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용욱이 주전으로 자리잡기가 어려웠던 시기였죠.
박용욱은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부산 출신 감독과 선수들로 구성되어 고향과 같은 느낌을 주던 한빛 스타즈를 떠나 친분이 거의 없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생을 구상해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창단을 목표로 힘을 모았습니다.
성과는 생각보다 이른 시점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프로리그의 첫 발이었던 KTF EVER 프로리그 2003에서 동양 오리온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결승전 무대에서 박용욱의 역할은 돋보였습니다. 3대1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5세트에 출전한 박용욱은 나도현을 물리치고 팀의 우승을 확정짓는 마무리 역할을 해냈습니다. 그 때 붙은 별명이 바로 '마무리박'입니다.
![[게이머그라피] 몰래 시작한 프로게이머…박용욱(1)](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208231219090065576_3.jpg&nmt=27)
◆왕조를 건설하다
박용욱은 동양 오리온이라는 팀이 SK텔레콤 T1으로 창단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 가운데 한 명입니다. 임요환이 팀의 간판 역할을 했고 최연성이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주목 받았지만 박용욱 또한 프로토스의 대표 선수로 활동하면서 창단에 도움을 줬습니다.
올림푸스 스타리그 16강 본선에 진출하면서 감을 잡은 박용욱은 다음 대회인 마이큐브 스타리그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잠재력을 터뜨렸습니다. 당시 최고의 테란 가운데 한 명이었던 베르트랑을 16강에서 제압한 박용욱은 박경락과 주진철이라는 저그의 대표 선수를 연파하며 8강에 올랐습니다. 8강에서 임요환, 전태규, 강민과 한 조를 이룬 박용욱은 임요환에게 패했지만 전태규, 강민을 제압하며 재경기를 만들어냈고 재경기에서는 임요환과 전태규를 무너뜨리고 조 1위로 4강에 진출했습니다. 4강에서 박경락을 상대한 박용욱은 3대0으로 완승을 거뒀고 강민과의 결승전에서도 3대1로 승리하며 첫 개인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2003년 11월의 일입니다. SK텔레콤 T1이 2004년 3월 창단했으니 박용욱의 마이큐브 스타리그 우승이 팀의 창단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SK텔레콤 T1은 창단 이후 순풍을 탄 배처럼 승승장구했습니다. 2004년 스카이 프로리그 1라운드에서는 6연승을 이어가는 동안 한 세트도 내주지 않으면서 기적과 같이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했고 광안리 결승전에서 10만 관중을 이끌어내는 초석을 만들었습니다. 또 MBC게임이 주최한 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바로 다음날 치러진 스프리스 MSL 결승전에서 박용욱과 최연성이 대결을 펼치는 등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2005년 프로리그 전기리그 결승전에서 라이벌 KTF 매직엔스를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첫 프로리그 우승까지 달성하면서 SK텔레콤 T1은 왕조로 우뚝 섰습니다. 1990년대 NBA를 제패한 시카고 불스가 왕조(Dynasty)라고 불렸던 것처럼 말이죠.
박용욱이 왕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기여한 공로는 다음 회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편에서 계속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SK텔레콤과 함께하는 e스포츠 세상(www.skteleco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