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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STX 김성현 "이영호를 넘어설 때까지"

[피플] STX 김성현 "이영호를 넘어설 때까지"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다. 큰 그릇은 만드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말로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좋은 이야기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수명이 짧은 프로게이머들에게 대기만성형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선수는 더더욱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STX 소울 김성현은 e스포츠에서도 대기만성형 선수가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무려 5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지만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김성현은 이번 시즌 5연승을 내달리며 STX를 이끄는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 했다.

김성현보다 훨씬 일찍 주전 자리를 꿰찼던 동료들을 지켜보며 힘든 시기를 보낸 적도 있지만 김성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믿었다. 언젠가는 노력의 대가가 나타날 것이라 굳게 믿고 꾸준히 연습실에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5연승을 기록하고 있는 현재 김성현은 아직도 연습실에 가장 먼저 내려와 가장 늦게 올라가는 선수다.

김성현을 두고 STX 박재석 코치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아직도 보여줄 것이 무궁무진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김성현의 이야기 속으로 지금부터 함께 들어가 보자.

◆발전 속도가 더뎠다?
발전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말은 프로게이머에게는 치명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프로게이머 수명이 워낙 짧기 때문에 빨리 실력을 키워 정상에 서는 것이 성공의 정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대부분의 성공한 선수들은 빠른 성장을 보였다.

[피플] STX 김성현 "이영호를 넘어설 때까지"

김성현을 발굴한 박재석 코치는 2008년을 회상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당시 테스트에서 과감한 전략으로 상대를 꺾는 모습을 보며 "패기 넘치는 선수"라는 생각에 김성현을 스카우트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연습실에 합류하고 실력을 확인하는 순간 한숨이 나왔다.

"사실 (김)성현이가 정말 못할 때 소울(STX 예전 이름)에 합류했어요(웃음). 그때 같이 들어온 선수가 김경효, 이신형, 김현우 등이었죠. 확실히 (김)경효는 발전 속도가 빨랐고 (이)신형이는 손놀림이나 판단력 등이 뛰어났어요. 상대적으로 (김)성현이는 두 선수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비중을 두고 관찰하는 선수는 아니었어요."

"제가 그때 정말 못하긴 했어요(웃음). 테스트 때도 사실 게임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그런 빌드를 쓴 것이었어요. 패기가 넘친 것이 아니었죠(웃음). 팀에 합류한 뒤 개념부터 다시 배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떻게 프로게이머가 됐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한심했거든요."

실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김성현은 그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못한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인드를 바꿨다. 무엇이든 배우려고 달려 들었고 한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 스스로 실력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배우는 일에 몰두한 것이다.

"스스로의 위치를 아는 것이 성장할 수 있는 첫번째 요소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실력이 현재 10정도 밖에 안 되는데 50으로 오인하고 50만 노력하게 되면 끝이죠. 저는 2008년 STX에 입단한 뒤 스스로를 마이너스 10점이라 생각했어요. 100으로 가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특별히 더 열심히 노력했다는 말은 옳지 않아요. 부족했으니까 당연히 그만큼 노력하는 것이 맞죠."

최고의 노력형이라는 말에 김성현은 손사래를 치며 이같이 말했다. 자신이 못하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프로게이머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김성현. 동료들도 놀랄 만큼 엄청난 그의 연습량은 김성현 입장에서는 스스로 부족하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에 불과했던 것이다.

◆동료들의 무서운 성장으로 힘든 시기 겪어
김성현과 함께 STX에 입단한 선수는 김경효, 이신형, 김현우 등이 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김경호는 가장 먼저 두각을 보여 프로리그 신인왕까지 획득했고 김현우 역시 저그전 스페셜리스트로 이름을 날리며 스타리그 4강까지 진출했다. 이신형의 경우 지난 시즌 STX에서 가장 많은 승수를 챙기며 에이스로 우뚝 섰다. 하지만 김성현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그저 그런 신예에 불과했다.


"인간인데 어떻게 힘들지 않았겠어요. 정말 괴로웠어요. 같이 게임을 시작했던 선수들은 모두 승승장구 하는데 저는 자꾸만 뒤쳐지는 것 같았죠. 그래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연습했지만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집에 내려가서 곰곰이 생각했어요. 과연 내가 계속 게임을 해도 되는지, 계속 잘할 수는 있을지 고민했어요. 4년 동안 한번도 하지 않았던 생각이었는데 한번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걷잡을 수 없었어요."

그 순간을 견디기 힘들었던 김성현은 숙소로 복귀하면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시즌 8연패로 마무리했던 김성현은 지금이 바로 그만둘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김성현은 굳게 마음을 먹고 연습실로 향했다.

그러나 연습실에 들어서는 순간 김성현은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한다. 자신이 만날 앉아 연습하던 자리를 보면서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까’를 생각했다. 처음 시작부터 달랐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좌절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 전원을 켰다. 코칭스태프에게는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스스로 되물었죠. 과연 네 끝이 여기냐고. 그런데 저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아요. 내 실력이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는데 그저 남들과 비교했을 때 뒤쳐졌다는 이유로 그만두기는 싫었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5년 째 연습을 하면서도 아직까지 고쳐야 할 부분,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잖아요."

박재석 코치는 성장이 느린 김성현에게 "천천히 성장하는 선수는 나중에 100% 성장을 이루고 났을 때 빈틈이 없다"고 조언했다. 초조할 수 있는 김성현에게 이보다 더 좋은 조언은 없었다고 한다.

"(김)성현이는 자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하지만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면 바로 흡수해요. 물론 고칠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지만 한번 고치고 나면 같은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지는 않아요. 아마 (김)성현이가 경험까지 쌓게 된다면 안정적인 실력을 가진 선수로 성장할 겁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드래곤 머리 하기 싫었어요"
김성현이 한때 잠시 주목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최고의 아이콘이었던 지드래곤과 같은 머리를 하고 등장했을 때다. 하얗게 머리를 염색한 뒤 김성현은 잠시 지드래곤과 비교되며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지금에서는 그때 파격적인 헤어를 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창피했어요(웃음). 성격이 워낙 수줍음도 많이 타고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데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쳐다보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사실 그 머리는 김성현의 의지로 한 것이 아니다. 조규백 코치가 소심한 김성현의 성격이 경기에서도 반영된다는 생각에 "스타일에 변화만 주자"고 이야기하고 파격적으로 바꾼 것이다. 그 당시 1군이 아니었던 김성현은 대들지도 못했다고 한다.

"경기장에서 팬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익숙해졌는데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 길거리를 나가는 것이 힘들었어요(웃음). 지드래곤 머리를 오래 하지는 못했죠. 잠시 관심을 받았다가 머리를 까만색으로 다시 하고 난 뒤 곧바로 관심이 줄어들더라고요(웃음)."

하지만 그때 머리스타일 덕분에 김성현은 자신의 의견을 내는데 당당해졌고 경기에서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등 변화를 겪었다. 박재석 코치는 "지난 번에는 욱해서 대들더라"라며 "순진한 것 같지만 고집 있는 선수"라고 전했다.

"솔직히 순하기만 하면 프로게이머를 하면 안 돼요. 박 코치님께 욕 안 한 것이 어딥니까(웃음)."



◆이영호는 넘어야 할 산
김성현의 최종 목표는 최고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최고의 선수인 KT 이영호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이영호는 한번도 김성현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지만 김성현은 이영호의 VOD를 꼼꼼히 분석하면서 체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존 최고의 선수가 테란이라는 사실은 저에게 행운이죠. 보고 배울 선수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영호의 경기를 초 단위로 분석해 본 적도 있어요. 테란전만 잘하던 제가 프로토스전, 저그전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데 이영호 선수 경기를 많이 참고하죠."

언젠가는 꼭 넘어야 할 산인 이영호. 하지만 김성현은 지금 실력으로는 어림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이영호를 목표로 조금씩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는 김성현의 성장 스토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당장 이영호를 넘겠다는 비현실적인 발언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를 목표로 삼아 계속 꾸준히 노력할게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앞으로 지켜봐 주세요."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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