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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차재욱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피플] 차재욱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차재욱이 운영하고 있는 고깃집을 찾아 영등포 소방서 뒤쪽을 한참 헤맸다. 사진에서는 가게 크기가 컸기 때문에 큰 음식점만을 살펴보고 돌아다녔는데 아무리 찾아도 오리고깃집은 보이지 않았다. 잘못 왔나 싶어 다시 휴대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차재욱이 한 가게에서 나와 반갑게 인사했다. 알고 보니 들어가는 입구 지역은 생각만큼 크지 않아 찾지 못했던 것이었다.

차재욱은 "대부분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이 같은 실수를 하신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작은 입구지만 들어가면 반전이 일어난다. 생각보다 훨씬 큰 내부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혼자 가게를 운영하기에는 힘든 크기였다.

갑작스러운 부친상으로 12년 동안 게임만 하던 차재욱이 사업가가 됐다. 당연히 실수도 많고 모르는 것 투성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달 사이 인생이 아예 바뀌어 버린 차재욱 전 CJ 코치.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가슴 속에 담겨 있을까. 그가 손에 꼭 쥐고 있던 A4 용지 두 장에는 그동안 그가 e스포츠인으로서 느꼈던 12년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하나라도 빼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인터뷰 전날 밤 새워 직접 적었다는 그의 12년 e스포츠 인생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힘들었던 온게임넷-공군 에이스 시절
차재욱은 "가장 불운했던 프로게이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왜 그렇게까지 생각할까 의문이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장 잘나가던 시기에 그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고 결국 그렇게 팬들에게 잊혀져 갔다.

"자이언트 킬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4대 테란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어요(웃음). 지금 팬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요(웃음). 그때 저도 ‘청년가장’이라 불렸었죠. 혼자 KOR를 이끌다시피 했으니까요. 그리고 팀이 우승할 때까지 저의 전성기는 계속 이어졌죠."

같은 시기에 데뷔한 동기들은 우승 후 최고의 스타가 됐고 그만큼의 대우를 받으며 승승장구했지만 차재욱은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뒤로 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비스폰 팀이었기 때문에 노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그는 조금씩 무너져갔다. 팀이 프로리그에서 기적과도 같은 우승을 이뤄냈지만 결국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우승 후 1년간 창단도 이뤄내지 못했고 그 와중에 팀이 조금씩 무너져가기 시작했어요. 우승 후 곧바로 창단했다면 다들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창단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저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어요."

[피플] 차재욱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온게임넷으로 창단됐지만 상황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KOR 이름으로 우승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해 주기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나 많이 지난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팀 안의 정치 싸움에 희생이 되면서 차재욱은 출전 기회조차 상실하고 말았다. 좌절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누군가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저는 너무 순진했던 거죠. 지금은 게임만 잘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그렇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했어요."

이대로 게임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억울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고 게임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들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데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스스로가 용서되지 않았다.

"공군 입대를 결정하고 난 뒤 이보다 더 힘들 수는 없었어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던 팬들은 ‘도대체 아무 것도 못하는 차재욱이 왜 공군 에이스에 갔냐’며 비난하기 시작했죠. 군대 편하게 가려고 편법을 썼다는 댓글까지 봤어요. 제 마음을 뒤집어 보여줄 수도 없고 정말 죽고 싶었어요. 게임이 너무나 하고 싶어 공군 에이스를 갔던 것인데 열정마저 저평가되니 힘이 빠졌죠."

차재욱은 공군 에이스에서 기회를 받아 출전하긴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또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폭스 이영한과 경기에서 앞마당만 정찰하는 실수로 상대 위치를 잘못 파악해 저글링에 끝나고 말았다. 이 경기 이후 팬들은 차재욱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악플을 달기 시작했고 차재욱은 이대로 끝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밑바닥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정말 힘들었고 더 이상 견뎌낼 수가 없는 상태까지 떨어졌죠. 하지만 공군 동료들이 힘을 줬어요. 저의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동료들이었기에 그들이 저에게 건네는 위로는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공군에서 제대를 한 뒤에도 차재욱은 게임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소속팀은 없어진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피플] 차재욱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승부조작이라니요.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요. 확신하는데 제가 계속 온게임넷에 있었다면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나중에 연루된 선수들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울며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머리 속이 복잡했어요. 군대에서 소속팀이 없어지는 것을 눈 뜨고 보고 있어야 했죠. 정말 힘들었어요."

돌아올 곳이 없었던 차재욱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CJ 김동우 감독이었다. 평소 차재욱의 성실함을 높이 샀던 김 감독은 차재욱에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말했다. 차재욱은 그 당시 김 감독의 제안을 듣고 난 뒤 눈물이 날만큼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온 세상을 가진 것처럼 기뻤다.

"CJ에 들어가보니 정말 제가 꿈에 그리던 팀이었어요. 제가 만약 전성기시절 이런 팀을 만났다면 지금처럼 e스포츠 역사 속에 묻히는 선수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해요. 코치 생활을 하면서 다시 선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김동우 감독 휘하에 있는 코치들의 정확한 업무 분담과 코칭 스태프를 믿고 따라와주는 선수들의 완벽한 조화를 본 차재욱은 혀를 내둘렀다. 꼭 이 팀을 우승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가슴 속 밑에서부터 끓어 올랐다.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그를 흥분시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부친상, 모든 것을 바꾸다
그러던 어느 날 차재욱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소식을 전했다. 언제까지 자신의 옆에서 후원자가 돼 줄 것이라 믿었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휴가라 집에 내려가던 길에 그 소식을 들은 차재욱은 어떤 정신으로 병원까지 뛰어갔는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봐도 뇌 엑스레이 한 구석에 까맣게 피가 차 있더라고요. 병원에 수술실이 없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결국 아버지는 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어요. 그때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어요.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죠."

[피플] 차재욱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가 더욱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아버지께서 자신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대구에서 계속 편하게 생활하셨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셔서 오리고깃집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셨다. 지금 차재욱이 운영하고 있는 고깃집은 시작부터 차재욱의 명의로 돼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께서 굉장히 미안해 하셨어요. 사실 KOR이 우승한 뒤 KT에서 저에게 영입 제안을 했거든요. 그 때 아버지께서 ‘조금만 기다려라. KOR이 창단될 수 있도록 대구시와 이야기 해보겠다’고 말씀하셔서 기다렸거든요. 결국 창단이 잘 되지 않았고 그 때부터 제 프로게이머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죠. 아버지께서는 그게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신 것 같아요. 아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으셨던 것이죠."

차재욱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가게 뒤쪽에 마련된 컨테이너 사무실에 누워 아버지가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느꼈다고 한다. 아들을 위해 사서 고생을 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져 밤 새고 혼자 눈물을 흘렸다.

"저 때문에 돌아가신 것 같아요. 물론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져요.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것은 또 아버지 덕분입니다. 아버지가 남겨주시려 했던 것들 보란 듯이 잘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차재욱은 부잣집 도령이다?
이런 멋진 아버지를 뒀기 때문일까? 차재욱은 e스포츠 관계자들이나 팬들에게 부잣집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 도련님으로 알려졌다. 게임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을 대충 하는 것이라는 오해도 받았다.

[피플] 차재욱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오해죠(웃음). 저는 지금까지 게이머를 하면서 부모님께 돈을 드렸으면 드렸지 제가 부모님 돈을 받아 허례허식 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아버지가 KOR 시절 팀을 위해 애를 쓰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돈으로 제가 호화로운 생활을 누려본 적도 없어요. 선수들 모두의 끼니를 때우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어요."

차재욱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 엄청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들 억대 재산을 물려 받았다는 오해를 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도 모르는 아버지께서 벌여 놓으신 사업을 수습하느라 잠잘 시간도 부족하다. 유산 받아서 편하게 살지 않겠냐는 오해는 그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렇게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진실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오리고깃집도 제가 정말 열심히 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겠죠. 저희 아버지께서는 노력한 만큼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셨고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오해는 앞으로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재욱의 열정, 잊지 말아 주세요"
비록 e스포츠를 떠나야 하는 차재욱이지만 아직까지도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크다고 전했다. 오리고깃집이 정상 궤도에 오르고 다른 일들을 모두 처리된다면 꼭 e스포츠로 돌아오고 싶단다. 그에게 e스포츠는 12년의 청춘을 바친 자신의 전부와 다름 없이 때문이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아요. ‘자이언트 킬러’였던 차재욱, KOR의 우승을 이끌었던 차재욱은 잊으셔도 좋지만 ‘누구보다 열정으로 똘똘 뭉쳤던 차재욱’은 잊지 말아 주세요. 지금도 마음은 e스포츠에 가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꼭 돌아가고 싶다는 것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e스포츠는 인생의 전부니까요."

잠시 외도를 할 뿐이라며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밝힌 차재욱.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팬들과 e스포츠 관계자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피플] 차재욱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큰 업적을 남기지도 못했는데 기억해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팬들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아버지를 보내드리는데 와주신 e스포츠 관계자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드려요. 여유가 없어 일일이 찾아 뵈어서 인사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감사한 마음이 정말 크다는 것만은 꼭 알아주세요."

인터뷰 말미에 어떻게 알았는지 STX 김은동 감독이 선수들을 끌고 찾아오자 버선발로 뛰어 나가던 차재욱. 그가 얼마나 e스포츠를 사랑하고 좋아했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되기를 바라본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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