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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MBC게임 김철민 캐스터 "침몰한 배의 키를 잡은 선장의 느낌"

[피플] MBC게임 김철민 캐스터 "침몰한 배의 키를 잡은 선장의 느낌"
MBC게임이 문을 닫는다. 오는 2월1일 MBC뮤직이 오픈하면서 1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오던 게임 채널은 문을 닫는다.

2001년 geMBC라는 이름으로 개국한 MBC게임은 온게임넷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면서 MSL, 철권리그 등을 정상에 올려 놓았다. 그 중심에는 김철민 캐스터가 존재했다. 개국과 함께 메인 캐스터를 맡은 그는 MBC게임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인물이다.

18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룩스 MBC게임 히어로 센터에서 녹화에 임하는 김철민 캐스터를 만났다. '아듀, MBC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그의 눈빛은 우수에 젖어 있었다. 10년 전 VCR을 틀 때마다 눈가가 촉촉히 젖어 들어갔고 패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목소리가 사그라들어갔다.

문을 연 자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대해 그는 "너무나 가혹하다"고 했다. 한창 장사를 잘하고 있는 가게의 문을 외부자가 강제로 닫고 압류 딱지를 붙인 뒤 나가라고 집행하고 철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Q MBC게임이라는 채널의 마지막 프로그램이라고 들었다. 소감은.
A 정말 우울하다. 침몰한 배에서 하나 남은 구명 보트를 타고 바다에 떠 있는 느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침몰한 배의 키를 잡은 선장이라는 생각이다. 출연하기 싫었지만 인간적인 예의는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왔다.

Q 출연한 이유가 따로 있나.
A MBC게임이 개국할 때 나를 불러준 분이 이 프로그램의 담당 피디다. 오학동 피디라는 분인데, 그 분이 전화해서 "마지막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김철민 캐스터가 필요하다"고 해서 출연하게 됐다. 서초케이블티비에서 일하던 나를 MBC게임으로 오도록 제안해 주신 분이어서 의리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출연하게 됐다.

그리고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기 MSL을 위한 서바이버 토너먼트를 모두 마친 뒤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다. 팬들은 MSL이 열릴 것이라 아직도 생각하고 계시고 게이머들도 대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듀, MBC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이 마지막이다. 잔인한 결론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팬들에게도 정식으로 문을 닫는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오게 됐다.

[피플] MBC게임 김철민 캐스터 "침몰한 배의 키를 잡은 선장의 느낌"

Q 2001년부터 함께한 MBC게임의 개국 공신이다.
A 당시 이름은 geMBC였다. 내 기억에 2005년 쯤에 MBC게임으로 이름을 바꿨다. 많은 추억들이 담겨 있고 내 인생의 청년기를 함께 보낸 채널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팬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희로애락을 함께 해 준 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Q 어떤 프로그램들을 맡았나.
A 너무나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모두 말하라면 하루 넘도록 인터뷰를 해야할 것 같다. 오늘 '아듀, MBC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자료 화면을 보는데 젊은 날의 김철민과 이승원, 김동준, 강민, 한승엽 등이 나오더라. 앳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오는데 진심 어린 웃음이 아니라 피식하는, 새는 소리가 나는 웃음이었다. 아직 믿기지 않고 입이 쓰다.

Q 그래도 가장 먼저 진행했던 프로그램이 생각나지 않나.
A KPGA 투어 1차 대회부터 생각이 난다. 매달 우승자가 한 명씩 나오던 대회였다. 이태우라는 선수가 우승을 했을 것이다. MBC게임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맡은 리그 프로그램이었고 MSL의 전신이었다.

Q 어렵겠지만, 아픈 기억이겠지만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을 꼽자면.
A 'TPZ'라는 프로그램과 MSL이다. 'TPZ'는 테란과 프로토스, 저그의 약자인데 임요환, 김동수, 홍진호가 각 종족의 대표 선수로 출연해서 전략, 전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황당무적 리플레이'라는 코너가 시청자들의 반향을 크게 일으켰다. 2008년쯤에 독립 프로그램으로 부활하기도 했는데 초창기 'TPZ'를 통해서 다양한 전략과 전술 등이 소개됐다. 개인적으로는 MBC게임이 지금처럼 인지도를 끌어올린 프로그램이자 코너라고 생각한다. MSL이나 프로리그가 인지도를 얻기도 했지만 이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현재의 위치에 오르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Q 'TPZ'를 진행하면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임요환과 홍진호, 김동수의 어리숙함으로 점철된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이야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반열에 올랐고 은퇴한 뒤 방송도 진행하면서 그런 모습이 사라졌지만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풋풋한 시절이었다. 홍진호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는데 정말 방송 부적격자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회가 거듭되면서 내가 담당 피디에게 이렇게 말했다. "홍진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고 했더니 피디가 "이제 리스닝이 되는군요"라고 답을 해줄 정도였다. 매회가 토익 시험을 보는 듯했는데 그 때부터는 귀가 트였다.

Q 리그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잊지 못할 파트너가 있다면.
A 이승원, 김동준, 강민, 한승엽, 서경종이다. 이 중에 이승원과 김동준은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밥 같았다. 특별하게 기억할 것이 없다. 그냥 생활이었다. 공기처럼 언제나 주위에 함께 있기에 고마움을 모르는 존재였다. 물 흐르는 듯해서 방송하기가 정말 편했다.

에피소드가 많은 조합은 강민과 한승엽이다. 솔직하게, 약간 과장해서 표현을 하자면 '언어 장애인' 2명과 방송을 하던 시절이라고 보시면 된다(웃음). 순진하면서도 어리바리한 모습들이 기억이 난다. 당시 박상현 캐스터와 유병준(유대현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승원이 조합을 이루고 있었는데 우리도 뭔가 하나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셋이 모여 밤샘 회의를 하기도 했다. 그 결과 '강철승'이라는 조합의 이름을 만들어냈고 일부러 방송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멘트가 "안녕하세요. 공공의 중계진 강철승입니다"였다. 방송 중에 일어나는 모습을 찍은 프로그램에서도 우리의 중계 화면이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것으로 기억한다.

Q 이승원, 김동준과의 에피소드는 없나.
A 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였다. 사고가 없었다. 소리를 하도 질러서 중창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이들은 방송을 너무나도 잘 아는 해설자였다. 지금 두 명 모두 온게임넷으로 이적해서 김동준은 리그오브레전드를 맡았고 이승원은 프로리그를 맡았다. 잘됐다고 생각한다.

[피플] MBC게임 김철민 캐스터 "침몰한 배의 키를 잡은 선장의 느낌"

Q 온게임넷이 MBC게임에서 그만 둔 출연자, 해설진, 작가진을 영입했다. 갈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
A 주위에서 왜 가만히 있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도 온게임넷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스스로 자문하면서 화가 났다. 왜 잘 흘러가던 MBC게임이라는 채널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우리가 다른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길 생각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까 옮길 생각을 하기가 싫어졌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이런 환경이 싫었다.

자리를 옮긴 사람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러한 시련을 준 상황, 환경, 구조가 싫었다.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문화 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데 삽시간에 채널이 사라지는 유약한 기반 위에 존재했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MBC게임에 들였던 10년이라는 시간이 무의미했다는 자책까지 하게 된다.

Q 오늘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과거를 회상하는 컨셉트다. VCR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A 부정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 '이걸 내가 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연출하는 피디에게 물었다. "우리 이 프로그램을 왜 해요?"라고 했더니 "상부의 지시라서 해야 한다"고 하더라. 우는 사람 뺨 한 대 더 때리는 것인가.

이 프로그램의 제작을 MBC게임에서 일을 하다가 MBC뮤직으로 넘어가서 밥을 먹을 사람에게 시킨다고 하면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채널이 문을 닫으면서 어디로 가야할 지 알지 못하는 피디가 연출을 하고 밥줄 끊긴 나에게 진행을 맡겼다. 처음에 섭외가 왔을 때 피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Q 에피소드를 떠올리는 자체가 부담스러운 표정이다.
A 향수의 끝을 잡아봤자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빨리 잊고 싶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 우울해 하는 것보다는 빨리 잊는 것이 최상책이다. 앞으로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편이 낫다. 새로운 게임 채널이 생겨서 MBC게임에 보란 듯이 갚아주고 싶다. 당신들의 정책이 잘못됐고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줄 무대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Q 만약 게임 방송국이 새로이 생긴다면 다시 시작할 생각이 있나.
A 그렇다. 그렇지만 그럴 여지가 있나. 일단은 e스포츠와 게임쪽 일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들어오지도 않겠지만(웃음). 스포츠나 일반 프로그램이라면 고려할 수 있다.

[피플] MBC게임 김철민 캐스터 "침몰한 배의 키를 잡은 선장의 느낌"

Q 이 프로그램을 끝으로 MBC게임이 문을 닫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
A 앞서 많은 이야기를 해서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영광스럽게 채널이 마무리됐다면 이런 후회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살던 집이 강제 철거된 사람의 입장이다. 아니다. 이런 비유가 맞을 것 같다. 영업을 하고 있는, 음식 잘 팔고 있는 음식점인데 업종을 바꿔야 한다는 몇몇 사람의 생각과 강짜로 인해 강제로 업종 전환을 해야 하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의 입장이다.

게임 채널이 음악 채널로 전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충격이 컸다. 게임 채널이 사라지는데 막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들 새 삶을, 옮길 자리를 알아보기 바빠하는 모습에 가슴 아팠다. 지난해 9월과 10월 정말 고민을 많이 했고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했다.

Q 마지막 녹화 현장에 온 기분은.
A 팬들로 넘쳐나던 객석, 프로게이머들이 와서 가득 채우던 대기실이 썰렁해졌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지 세트들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보니까 더욱 마음이 쓰리다. 압류 딱지가 붙어 있고 짐이 빠져 나간 자리에 서 있는 느낌이다.

팬들에게 소중한 공간이고 선수들에게도 잊지 못할 공간인데 더 이상 올 수 없다는 사실이 싫다. 2008년에 이사 와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곳의 문을 닫고 나가게 됐다는 점이 가장 싫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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