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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25살 김재훈의 멈추지 않는 도전

[피플] 25살 김재훈의 멈추지 않는 도전
"김택용 그 이상이라니까요. 새로운 스타탄생 기대하셔도 좋아요!."

2008년 하반기 MBC게임 히어로 게임단의 담당 기자 시절 코칭 스태프로부터 김재훈의 이름을 수십번 들었다. 김택용이 MBC게임에 있을 때에도 하태기 감독을 비롯한, 박용운, 김혁섭 등 코칭 스태프는 김재훈이 "조만간 뜬다"라며 주목할 선수로 꼽았다. 내부 평가전에서 김재훈이 대부분 1위를 차지한다며 박성준, 김택용을 이을 MBC게임 차세대 스타가 탄생할 것 같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재훈은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커리어가 없는 평범한 프로게이머 중 한 명일뿐이다. 김택용을 능가할 기대주로 관심을 모았지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프로게이머가 되지는 못했다.

김재훈은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격랑의 시기를 겪는 과정을 모두 버텨낸 의지의 선수다. 팀플레이 전담 선수에서 가끔씩 개인전에 출전하며 주전과 후보를 오가던 선수로,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게임단이 문을 닫으면서 방랑 인생을 살아야 했던 수난의 선수로, 주전이 되어서는 종목이 바뀌면서 적응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 부호가 붙었던 선수로, 스타크래프트2:자유의 날개에서 확실한 실력을 보여줬지만 군단의 심장으로 버전이 바뀌면서 나이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표가 또 다시 붙는 선수였다.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지 않겠냐는 평가를 들고 있는 지금도 김재훈은 파고를 스스로 헤쳐 나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5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김재훈은 8게임단 에이스로 거듭났다.

올해 나이 25살. 프로게이머 전성기가 끝나고도 남을 나이에서 김재훈은 "지금이 전성기"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힘들었던 지난 5년 동안 김재훈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생각을 할 예정인지 들어봤다.

◆"만년 기대주? 경기가 두려웠어요"

김재훈이 내부적으로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그 당시 최고의 포스를 뿜어냈던 김택용과 최고의 투 톱 테란 염보성, 이재호를 제치고 MBC게임 히어로의 내부 평가전에서 당당하게 1위를 거머쥐었다. 코칭 스태프는 김재훈을 눈여겨보고 집중 트레이닝을 시켰다. 김택용이 2008년 SK텔레콤으로 이적했을 때도 MBC게임은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연습실에서는 김택용보다 더 잘하는 김재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MBC게임의 코칭 스태프는 김재훈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김재훈이 심각한 무대 공포증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한두 번 경기에 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 믿었지만 김재훈의 무대에 대한 두려움은 대단히 컸다.

"경기석에만 앉으면 머리 속이 하얗게 변했어요. 습관처럼 프로브를 뽑고 질럿과 드라군을 컨트롤하긴 하지만 내가 무슨 플레이를 하는지 몰랐어요. 경기에서 패하고 대기실로 들어오면 왜 졌는지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나중에 VOD를 보면서 내가 왜 저렇게 했는지 한숨밖에 안 나왔어요."

어느 정도 무대에 적응하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던 코칭 스태프들은 2년이 넘도록 여전히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한 김재훈을 보며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김재훈마저도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도저히 극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경기석에만 앉으면 손에 땀이 심하게 나고 긴장을 한 나머지 다리가 풀릴 정도였어요. 어떻게든 극복해보기 위해 땀을 억제하는 한약도 먹어보고 심리 치료도 받았죠. 무대에서 내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해보지 않은 방법이 없었어요."

하지만 어떤 방법도 김재훈의 무대 공포증을 치료하지는 못했다. 결국 김재훈은 '기대주'라는 타이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팀이 해체되는 쓰라린 경험을 했고 8게임단에 입단했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김재훈은 여전히 신예와 다를 바 없이 무대에서 긴장했고 성적도 꾸준하지 못했다.

◆인생을 바꿔 놓은 8게임단

이쯤 되면 프로게이머를 그만 둬야겠다는 고민을 할 수도 있었다. 연습실에서 아무리 잘한다해도 실전에서 지는 선수라면 팀에 그 어떤 보탬도 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연습실에서 잘하는 것만 가지고는 인정 받지 못한다.

[피플] 25살 김재훈의 멈추지 않는 도전

"프로게이머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고민을 했죠.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 무대 공포증을 극복할 자신이 없었어요. 은퇴를 하는 것이 낫겠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죠.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는 거에요. 10대부터 꿔왔던 꿈이고 이제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그만 두면 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시간만 낭비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고민 끝에 김재훈은 끝까지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하면 피나는 연습을 통해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이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김재훈은 미친 듯이 연습에 임했다.

8게임단에 입단한 김재훈은 인생을 바꿔줄 두 명의 사람을 만났다. 바로 한상용 코치와 '폭군' 이제동이었다.

"(이)제동이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최고의 위치에 오른 선수는 마인드부터 다르더라고요. 게다가 (이)제동이가 해주는 격려가 큰 힘이 됐어요. 스타크래프트2로 넘어오게 되면서 (이)제동이가 '이제부터 네가 갖고 있는 잠재력이 폭발할 테니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더라고요. 최고의 선수에게 인정 받고 나니 저에 대한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이제동의 격려와 함께 김재훈을 또 다른 길로 인도한 것은 한상용 코치의 묵묵한 지원이었다. 사실 다른 팀에서는 아무리 잘하고 기대주라고 해도 나이가 많은 선수보다는 나이가 어린 선수에게 먼저 기회를 주기 마련이다. 연습은 성실하게 하지 않더라도 무대에서 잘 이기는 선수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상용 코치는 달랐다. 성실하게 연습하는 선수가 잘 돼야만 팀 전체가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에 연습 때 얼마나 성실한지 그리고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이가 많다고 기회를 주지 않던 다른 팀 코칭 스태프와는 달랐다. 연습실에서 성실하게 연습하고 성적도 좋았던 김재훈은 계속 기용될 수 있었고 그 덕에 무대공포증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경기 하면서 여유를 찾았어요. 요즘은 생각을 하면서 플레이를 하니 장족의 발전인 거죠(웃음). 이제는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도 가능해요(웃음). 이제서야 그런 것들을 경기 내에서 할 수 있다니 제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아시겠죠(웃음)?"

이제동에 따르면 김재훈은 방송 경기에서 연습 때 보여준 기량의 60%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한다. 도대체 100% 제 실력을 발휘한 김재훈은 얼마나 무서울까? 빠른 시간 내에 그렇게 되길 바라는 사람은 아마도 김재훈 자신일 것이다.

◆포기할 수 없는 꿈을 향해

25살 적지 않은 나이가 돼서야 꿈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김재훈. 현재 8게임단 에이스는 누가 뭐래도 김재훈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김재훈의 꿈이 이뤄졌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김재훈의 꿈은 단순한 팀 에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우승을 꿈 꾸죠. 우승 트로피 한번 들어 올리지 못하고 프로게이머를 은퇴하고 싶지는 않아요. 또한 KT 이영호, STX 이신형 등 에이스 결정전에 나가도 동료들이나 코칭 스태프가 '이겨줄 것'이라고 믿어주는 게이머가 되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그들에게 믿음을 주는 프로게이머는 아닌 것 같아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다. 무대 공포증을 고치는데 무려 5년의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완벽하게 고친 것은 아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김재훈은 손 앞에 와 있는 것 같은 꿈을 포기할 수가 없다.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나이가 많은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아요. 어느 순간 돌아보면 최고가 돼 있을 정도로 정신 없이 연습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해 꿈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열정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김재훈. 하루 빨리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고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길 바라본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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